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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sky2603 Aug 9, 2016

Yuna

Tracks

  • Release Date 2013-10-14

Description

자우림 정규 9집 < Goodbye, grief. >

누구나 스물이 되면 거창한 꿈 하나 정도는 꾸는 법이다. 그런데 그걸 ‘20대의 무한한 가능성’ 따위로 포장해서 선전하는, 청춘 보부상들을 나는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아프니까 청춘이다”처럼 청춘을 스테레오타입화하는 지루한 문구들. 그 이전에 필요한 건, 현실에 대한 냉정한 직시다. 일례로, 자우림은 8집의 오프닝 트랙 ‘Happy Day’의 부기에 밴드의 세계관을 ‘패배주의적이면서 동시에 낙관적’이라고 정의했던 바 있다. 9집 < Goodbye, grief. >의 첫 싱글 ‘이카루스’에서 그들은 이걸 ‘사소한 비밀 얘기 하나’라고 노래한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사소한 비밀 얘기 하나,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아.”

이 곡의 성취는 특별하다. 지난 싱글 리뷰에서도 언급했듯, 자우림 9집의 유전자 정보가 이 곡 하나에 다 들어있다. 선동적이면서도 도취적인 김윤아의 기품 있는 보컬,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멤버들의 능란한 연주, 인상적인 주요 멜로디와 그 뒤를 부드럽게 감싸는 보컬 하모니, 점층적인 구조로 현명하게 조율된 곡 전개 등, 2000년대 이후 자우림이 발표한 최고의 싱글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우리는 그러나 이 곡이 앨범의 10번째에 실려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첫 싱글인데 음반의 후반부에 위치해 있다니, 이건 명백히 스토리텔링을 고려한 배치라고 추측해볼 수 있는 것이다. 웅장하면서도 우아한 스트링 세션으로 문을 여는 첫 곡 ‘Anna’에서 화자는 ‘안나’에게 처절하게 버림받은 상태에 놓여있다. 자연스럽게 안나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물음이 형성될 것이다. 뒤를 잇는 곡의 제목은 ‘Dear Mother’다. 그렇다고 해서 ‘Dear Mother’에서의 엄마가 안나라는 식의 결론은 단면적인 만큼 위험해 보인다. 그보다는 이 두 곡의 주인공이 공유하고 있는 어떤 지점을 겨냥해야 할 것이다. 바로 삶에 대한 ‘좌절’과 상대방에 대한 ‘죄의식’이다.

이런 주제에 맞춰 자우림이 연출해내는 사운드는 장르를 무람없이 오가면서 듣는 이들을 끌어당기는데 성공한다. 예를 들어 ‘Anna’에서는 피아노 연주와 현악 사운드로 스케일을 장악해나가면서 밀어붙이고, ‘Dear Mother’에서는 잔잔했던 초반부의 흐름을 가스펠풍의 리듬과 코러스로 갑작스럽게 변환시켜 혼란스러운 내면을 인상적으로 표현해낸다. ‘님아’ 역시 마찬가지다. 자우림은 이 곡에서 로큰롤 비트와 마치 시조를 연상케 하는 가사에 구성진 가락을 결합시켜 사랑에 빠진 화자의 심정을 묘사하고 있다. 기타와 건반 솔로가 현란하게 부딪히는 후반부가 특히 만족스럽다.

기쁨의 순간은 그러나 잠시 뿐이다. ‘템페스트’가 노래하듯 ’폭풍이 다가오고 있는’ 까닭이다. 이 곡에서도 자우림은 테마에 맞춰서 곡의 전개를 능란하게 풀어간다. 폭풍을 예고하는 듯 둥둥거리는 드럼 연주을 근간으로 삼은 뒤 사운드를 겹겹이 쌓아가고, 마침내는 강렬한 이미지를 그려내는 와중에 격렬한 톤으로 폭발을 일궈낸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강렬함과 격렬함 사이의 뜨거운 합선(合線)이 곧 자우림 음악의 요체다. 이처럼 자우림 같은 좋은 록 밴드는 음악을 함에 있어 원심력과 구심력을 동시에 구현할 줄 안다. 척력으로써 완성도를 거머쥐고 인력으로써 설득력을 확보한다. 누군가 나에게 이에 대한 모범적인 예시를 묻는다면, ‘이카루스’나 바로 이 곡 ‘템페스트’를 일착으로 거론할 것이다.

‘I feel good’은 ‘템페스트’와는 반대로 화사한 기운이 곡 전반에 퍼져있다. 이 곡에서 아픈 기억을 지워버린 주인공은 잘 될 것만 같은 예감과 함께 폭풍을 뒤로 하고 본격적인 인생길에 오른다. 스트록스(The Strokes)풍의 세련된 로큰롤을 기반으로 하는 이 곡도 사운드와 가사가 불가피한 형식으로 결합되어 있어서 도대체가 체위변경이 불가능한 수준을 쾌척한다. 이 곡을 떠나 이번 9집 전체가 굴삭해낸 가장 큰 성취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이어지는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분위기는 다시 전환된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날들을 추억하는 화자는 떠나간 당신을 멜로디만큼이나 애절하게 호명한다. 여기에서의 당신을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갈구할 수밖에 없는, 청춘의 그 어떤 찰나라고 받아들여도 좋겠다. 당신(이라는 청춘)은 어딘가에서 확실하게 존재하지만, 나의 부름은 결국 너라는 존재의 의미에 가닿지 못한다. 청춘의 비극은 이러한 존재와 의미의 간극 속에서 탄생한다. 이 순간, 청춘은 마치 무지개처럼 가까워지면서 멀어지는 것인데, ‘무지개’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앞서도 강조했듯이 9집의 키워드는 ‘좌절’과 ‘죄의식’이다. 현실에 대한 좌절과 떠나간 누군가에 대한 죄의식은 청춘이라는 시절의 자연스러운 부산물이다. ‘이카루스’가 앨범의 10번째에 위치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카루스’는 ‘좌절’과 ‘죄의식’, 이 둘 모두를 품에 안고 마지막 곡 ‘슬픔이여 이제 안녕’와 함께 9집의 대미를 장식한다. 그 어떤 작품이든 첫 싱글은 대개 음반의 표정을 상징한다. 이 곡을 괜히 10번 트랙으로 넣은 게 아니라는 의미다.

자우림은 이 음반에서 긍정주의라는 복음을 빌려 ‘넌 할 수 있어’라거나 ‘슬픔 따위 안녕’이라는 선(善)해석으로 듣는 이들을 마취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냉엄한 현실을 먼저 마주하라고 말한 뒤 ‘이카루스’의 가사처럼 슬며시 용기를 불어넣어준다. 그러니까 뭐랄까. 마취제가 아닌 각성제로서의 음악이다.

다음과 같이 정리하려고 한다. 삶이라는 것은 결국 피할 수 없는 패배라고. 희망이란 건 그래서, 희망이 없는 상황 속에서만 겨우 간절해질 수 있는 거라고. 그제서야 우리는 조심스럽게, ‘Goodbye, grief.’라고 노래할 수 있는 거라고.

추신: 이 글을 가사 자료 없이 썼다. 그럼에도 노랫말을 듣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김윤아의 탁월한 발성 덕분이다.

글,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 이 음반은 '오늘의 뮤직'의 2013년 10월 5주 '이 주의 발견 - 국내'로 선정되었습니다.
선정위원들의 평가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단]
김학선 - ★★★☆ 잘하는 것을 잘하기. 근작들 가운데선 가장 우위.
이민희 - ★★★ 거창한 10집 이벤트는 없다, 감정도 표현도 고루 자연스럽다.
서정민 - ★★★☆ 다채로운 곡들 사이에서도 '자줏빛'이 또렷하다. 이건 밴드로서 대단한 강점.
장유정 - ★★★★ 관록과 연륜이 묻어나면서도 여전히 신선하다.
이동연 - ★★★☆ 뭔가 에덜터리한 끈적한 사운드, 여전히 매력적인 보컬

[오늘의 뮤직 네티즌 선정위원단]
김용민 - ★★★★ 김윤아의 상상력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밴드의 저력이 놀랍다. 여전히 중심은 김윤아지만 이번엔 그것이 아쉽지 않다.
최수용 - ★★★★☆ 밴드 자우림에 대한 호불호는 나뉠 수 있겠다만, 이 앨범은 그러한 접근조차 불허할 듯.
유성은 - ★★★☆ 여전히 발전 도상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어떤 거물밴드의 신작.
최석현 - ★★★★ 특유의 아방가르드적 미학을 버린 점은 아쉬우나, 여전히 귀를 잡아끄는 관록의 '국대 밴드'.
조경진 - ★★★★ 드라마틱한 곡의 전개와 가사의 확장성이 돋보이며 김윤아의 보컬 또한 고혹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다.

Jaurim이선규, 김윤아, 김진만

㈜사운드홀릭

자우림 10주년, 그리고 새로이 맞이한 Decade. 1997년 앨범 [Purple Heart]로 데뷔한 자우림. 이후 1, 2년에 한 장 꼴로 정규 앨범을 발표했고, 그 어떤 아티스트보다도 기복 없이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세계 시장에 견줄만한 한국의 대표 록 밴드로 평가받아왔다. 특히, 홍대 씬으로 대표되는 인디 계열의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최근 집중적인 조명을 받으면서, 그 시발점이 된 1세대 아티스트이자 메이저에서도 대성공을 거둔 전무후무한 밴드라는 점에서 자우림의 음악과 역사는 다시금 재평가되고 있는 분위기이다. 영화 ‘꽃을 든 남자’에 수록된 데뷔곡 ‘헤이헤이헤이’와 첫 음반 발매이후 2007년까지 자우림은 10년간 정말 뒤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바쁜 세월을 보냈다. 음반, 공연, 방송을 누비며 쉴 새 없이 활동하던 시간에도 일본 진출에 성공하여 한류에 물꼬를 튼 바 있고, 틈틈이 솔로 앨범은 물론 각자의 프로젝트와 사업까지 진행하며, 초인간적인 면모를 과시한 바 있다. 이는 자우림과 멤버들이 그 어떤 아티스트보다도 창작열에 불탔고, 성실히 자기관리를 해왔는지를 증명하는 단적인 예이기도 하다. 2006년 가을 발매한 6집 앨범과 활동을 끝으로 멤버들은 2007년을 자우림만의 안식년으로 정했고 뚜렷한 밴드 활동 없이 1년간 처음으로 각자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10년간 열심히 달려온 스스로에 대한 깊은 보상이자, 새로운 10년을 맞이할 재충전의 타이밍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지난해 자우림은 새로운 Decade를 맞이하여 과거에 비해 훨씬 보편적인 음악 스타일과 성숙한 내용을 담은 7집 [Ruby Sapphire Diamond]를 공개했다. 많은 이들은 타이틀곡으로 낙점된 ‘Carnival Amour’를 통해 ‘Bright’과 ‘Dark’의 묘한 이중성을 동시에 표출해온 자우림의 향후 10년간의 방향은 ‘철저히 밝음’이 될 것이라 점쳤다. 하지만, 그러한 예상은 또 다시 보기 좋게 빗나갔다. 자우림만의 묘한 이중성, 매니아와 대중 모두를 납득 시킬 수 있는 독보적인 음악성은 이미 그들 사이에서는 감각적으로 내제되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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