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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lease Date 2017-08-09

Description

Joe(1727~1769) 에게 양악(洋樂)을 처음 접 시작은 1757년 연암(燕巖) 박지원 선생이 영국에서 넘어온 청교도 선교사인 Duke Cech 했을 때의 이야기다.

조선 후기 실학자이던 박지원은 경포대(鏡浦臺) 앞 바다에서 쓰러져 있던 외국인 선교사를 발견하게 되는데 후세에 그 모습을 묘사하길 금발의 8척정도 되는 장신이었고 왼손엔 기타와 오른손엔 성경책을 가지고 있었고 한줄기 빛 사이로 쓰러져 있다 했다. 그 모습이 실로 놀라워 본가에 데려가 4개월 정도 경남방언을 가르쳤는데 놀랍게도 조선의 언어를 금방 구사했다고 한다. 그 후에 선교사가 말하길 본인은 황금의 나라 지팡그로 선교여행을 떠나다 탐라의 동쪽에 살던 귀신고래가 그 배를 난파시켜 경포대로 떠밀려 왔다고 했다. 그 해 가을 둘은 지리산에 올랐다. 선교사는 기타라는 것을 연주 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최초의 양악의 전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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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은 실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속으로 놀라움을 표현 하던 때에 심장이 뛰고 팔과 다리를 앞뒤로 휘젓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정신을 차린 뒤 선교사에게 이 악기의 전수를 청했으며 그 때에 박지원은 이 악기를 이렇게 이름 지었다.

機 틀 기 打 칠 타. 자신이 알던 음악의 틀을 때려서 부쉈다 하여 지은 이름이다.
이 조선 최초의 기타는 병자호란 당시 불타 없어 졌고 춤을 추던 박지원의 모습을 본 사람은 선교사 뿐이였기 때문에 후세에 어떠한 방법으로도 전해지질 못했다. 그 후 다산 정약용이 카톨릭에 심취하게 되어 또 다시 양악의 기반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남인과 북인 들은 록근얼(綠根蘖)의 발전을 늘 토론하며 다투었는데 이게 붕당정치의 심화였다.

정약용은 록거비리(綠據斐理)를 받아드려 만 백성을 즐겁게 해주어야 한다 늘 말했으며 그것이 목민심서(牧民心書)에도 서술이 돼있다. 하지만 북인들은 "어딜 천한 것들이 록근얼(綠根蘖)을 할 수가 있느냐?" 라며 늘 거부해왔고 훗날 그 일을 계기로 귀양까지 떠나게 된다. 많은 신식 문화를 발전시킨 정약용은 충남 대전에 마지막 책을 쓰셨고, 그 책이 바로 '건기심열애정목강산록(健己心熱愛靜穆江山綠)'이었다.

건기심열애정목강산록 이라 함은 '건강한 몸과 마음, 불타는 사랑과 고요한 평화. 아름다운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라고 서술되어 있으며, 정약용이 얼마나 백성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의 구절이다. 고서는 대전에 대대로 전해져오다가 한국전쟁 때에 월평동산성(月坪洞山城)에 묻히게 되고,

그리고 현재 2017년
우리는 그 사랑과 평화를 노래하기 위해 26년간 도굴과 약탈을 통해 지식을 찾게 되었고

이 모든 일들은 이제 현세에 다시 시작하게 된다.

멋진인생

멋진인생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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