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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s

  • Release Date 2017-09-28
  • 1. The Lion /

Description

마음 저편을 울리는 목소리 권월(Kwon Wol)과
공기를 붙잡는 프로듀서 퍼스트 에이드(FIRST AID)의 프로젝트팀 포워드(F.W.D.)
관계의 어긋남과 아쉬움을 노래하는 ‘사자’
비릿하게 비가 왔었다. 보라색 하늘은 전운을 예고하듯 언제 금 다시 비를 뿌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들판이라는 세계에는 사자와 나, 단둘뿐이다. 이 세계의 사자는 나에게 일종의 신앙이다. 사자의 길고 탐스러운 갈기는 찬양의 대상이었고, 무겁고 힘 있는 목소리는 우리를 경외하게 만든다. 무릎을 꿇고 얼굴을 풀숲에 파묻어 엎드린 나는 그 목소리가 의미하는 바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내용은 중요치 않았다. 거룩한 음성은 꿇은 무릎을 두드려 멈춰있던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이곳에는 무심하게 풀이 무성해,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간질간질한 느낌을 받는다. 나는 이 들판이 참 맘에 들었다. 오늘같이 비가 오고 나면 걸음마다 발에 채는 풀이 미끄러워 넘어지곤 하였지만, 괘념치 않을 정도로. 넘어져 무릎을 꿇은 자세로 앉아 준비되지 않은 나를 탓하며, 단지 풀은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니까, 라고 이타인지 집착인지 모를 생각을 하곤 했다.

흙내음 조금과 풀, 사자와 내가 전부인 이 세계는 거대한 천으로 둘러싸여 있다. 완전한 원의 닫힌 곡선으로 우리를 아늑하게 감싼 천은 막연한 두려움의 근원이었다. 외부의 존재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신성한 천은 그 자체로 바깥을 생각할 수 없게 만들어, 포근함에 젖어 들게 하였다.

보라색 하늘 아래서 우리는 날마다 생존을 내건 극기를 이어나갔다. 풀을 베어 먹기 좋은 크기로 다듬어놓으면, 저녁 무렵 잘 마른 풀더미로 허기를 달래는 식이었다. 저녁마다 내 손을 향한 사자의 정확한 시선을 기억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로 했다. 우리는 들판의 생활에 잘 적응했다.

적응했다고 생각했다.
아무 일도 없을 것 같던 어느 화창한 저녁에, 신성한 사자는 풀을 거르고 야위기 시작했다.

야윈 몸에서 기괴하게 내뱉는, 알아들을 수 없는 울부짖음에 세계가 사시나무처럼 떨곤 하였다. 우리에게는 생존의 문제였기에, 경외심을 딛고 갖은 수를 생각해보았다.

비가 온 직후의 풀을 베어보기도, 흙내음이 진한 곳의 풀을 베어보기도, 홀로 동떨어져 있는 곳에 자란 풀을 베어보기도, 노랗게 타들어 간 풀을 베어보기도, 풀의 밑동만 베어보기도, 풀의 끝자락만 베어보기도, 풀을 베어 길이를 오름차순으로 늘어놓기도, 풀을 씹어 뱉어보기도 했다. 풀을 가져갈 때마다 매번 사자 앞에 무릎을 꿇었지만, 그 무엇도 사자의 절규를 막을 수 없었다.

매 저녁마다 내 손을 향한 사자의 정확한 시선이 떠올랐다. 온갖 풀독으로 솜사탕처럼 부풀어 오른 나의 손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가엾은 나의 손. 곪은 부분을 살짝 물어 터뜨렸다. 발자국 선명한 흙바닥에 피가 조금 스며들었다.

사자는 이내 눈빛이 변해, 시선을 거두지 않고,
서서히, 걸음을 옮겨,
나의 손 앞에,
커다란 주둥이를 갖다 댔다.

까끌까끌하다.

비릿한 비가 내린다. 사자는 피 맛을 보았다.
나는 끝을 알 수 없는 천으로 다가가, 조금 망설인 뒤, 조심스레 찢어내었다.

글/ 퍼스트 에이드

F.W.D.

Young,Gifted&Wack Rec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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